성소부부고'는 8권 1책으로 필사본이다. 작성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만력 계축에 쓴 이정기의 서문으로 미루어 보면 1613년(광해군 5) 봄이나그 전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허균의 일생 중에서 가장 불우했던 시기에서 탄생된 이 책은 저자가 초야에 칩거하면서 그동안 저술한 시와 산문들을 모아
.[7] 네 건 모두 사람이 죽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황당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수령들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감영으로 올려보낸 것들이었다.
이 장에서는 국문3고소설론과작가-강의와 교재에 소개된 고소설 작가 네 사람김시습허균김만중박지원의 문학관 및 작품 등에 관하여 설명하기로 하자.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척독이라고 분리된 편지가 연구물에는 많이 있으나, 척독만 따로 분리하여 연구한 논문들은 거의 없다. 이러한 척독에 관한 연구는 허균이 성소부부고에서 ‘서’와 ‘척독’을 분리시켜 편찬한 사실에 주목하여 척독에서 허균의 어떤 면모가 드러나는지 살펴보고 있다.
허균의 사상적 특징으론 상당히 많은 부분이 거론되었다. 그의 뚜렷한 사상적 흔적으로는 정치사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성소부부고』에 ‘논(論)’의 형식으로 된 각종 글 속에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이념과 내정의 개혁, 국방정책의 강화, 신분계급의 타파 등으로 정리된다. 「정론」(政論
Ⅰ. 개요
'동대문밖의 강릉'이라는 속담 속에 담긴 뜻은 이곳의 자연환경이 타 지역에 비해 빼어날 뿐 아니라 문화적 자긍심도 높았음을 암시한다. 어느 지역이건 오랫동안 주민들 사이에서 전승되어 온 문화가 있으며 그것은 지역민에게 정신적 일체감과 구심체를 형성하고 있다.
강릉이 일찍이
Ⅰ. 개요
허균(1569~1618)은 조선 중세문학에서 처음으로 농민들의 반봉건투쟁을 반영한 사회소설을 쓴 진보적 작가이며 시인이다. 허균의 자는 단보, 호는 교산 또는 성소이며 별호는 일월거사이다. 그는 1569년 서울의 이름난 양반문인가정에서 태어났다. 허균은 12세에 아버지를 여윈 후 편모슬하에
문학사상에서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었다. 그의 문학사상에서는 현실중시의 사실주의를 확인할 수 있고, 사회제도에 저항하는 비판정신과 민중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강릉에 피란하면서 겪은 임지왜란의 체험을 한시에서 가장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현실을 반영하여 사실주의에 이르렀고,
전기
- 건국초기문사 : 최응, 최언위, 최승로
- 신진문사 : 경전을 바탕으로 문장 수련,
- 조탁에 의한 정서 표현이 충실한 시가들,
왕실 주도하 화려한 사조 중심 공리적 귀족문학
+ 일부 처사문인들의 초세적 시문학
4대 문벌문사 : 최충, 이자연, 김부식, 최유청
정지상: 고려 전기 문예적
허균의 정치․사회사상을 민권․민본 사상이라 할 때 주목할 점이 그의 ‘민’관이다. ‘民’은 ‘君’에 대한 대칭적 상대개념이며, 전통적 유교윤리는 民을 다스리는 이상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리고 ‘안민’이니 ‘친민’이니 하여, 고대중국의 천명사상에 바탕을 둔 위민사상을 이상으로
1.『홍길동전』연구의 선행과제
(1) 작자 시비(是非)문제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대단한 명예를 누려온 작품이다. 그리고 작자로 알려진 허균(許筠, 1569~1618)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그의 문학적 재능이 이 작품과 결부되어 『홍길동전』은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홍길동전』에